“세계 정신질환 평생 유병율 48%.”
이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 깊숙이 들어와 버린 ‘우울증’. 세계적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문제 또한 증가하고 있다.
2011년 DATAMONITOR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 평생 유병율 중 우울증이 17%(여자 25%), 불안장애가 25%를 차지한다. 우울증 치료제의 시장 규모는 11.5조원이며, 연평균 1.8%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환자의 1/2이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등 7개국에 포진돼 있는 가운데 한국의 경우, 2012년 한국보건의료원은 주요 우울장애(MDD)의 평생 유병율이 5.6%이며 매년 2.5%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증가하고 있는 우울증 환자의 치료 동향은 어떨까?
우울증은 가장 중요한 신경전달물질 세 가지(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의 부족 또는 불균형으로 발생한다는 모노아민 가설이 가장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세 가지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약물은 개발된 것은 없다. 현재는 이 세 가지 물질 중 하나 또는 두 가지를 표적으로 한 치료제만 개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낮은 치료율과 약을 먹은 후 2주 정도를 기다려야 약효가 나타나는 등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우울증 치료의 특효약은 아직 없다. 그야말로 우울증 치료제 시장은 신약의 블루오션인 셈이다. 아직은 블루오션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연구에 어려움이 크지만 시장성으로 봤을 때는 도전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분야이다.
■ 삼중 재흡수 저해에 의한 우울증 후보물질 개발
우울증 치료제로 시장에 나와 있는 약은 우울증을 일으키는 세 가지 물질 중 한 가지 또는 두 가지만 제어하는 것이다. 현재 나와 있는 치료제는 구갈, 변비, 배뇨곤란, 시력장애, 발기부전, 심혈관계에 대한 부작용으로 혈압, 맥박, 심장전도, 기립성 저혈압, 진정작용 등의 부작용 뿐 아니라 낮은 관해율(remission rate)과 약물 투여 후 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수 주 또는 수개월의 지연시간 (lag-time)을 나타내는 등 치명적 단점이 있다. 따라서 기존 약물에 비해 부작용이 낮고 효과가 높은 치료약의 개발이 절실하다.
한국과학기술원(이하 KIST) 한호규 박사(사진)팀이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삼중 재흡수 저해에 의한 우울증 후보물질 개발’. 한 박사팀은 한 개의 약물이 작용하여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노에피네프린 및 도파민의 재흡수를 동시에 저해하는 새로운 화합물을 발굴하였다. 이 화합물은 세포실험에서 기존의 약물 대비 수백 배의 높은 생물활성을 가졌고 생체 내에서 안정하며, 중추신경계 약물의 효능을 나타내는데 필수적인 BBB의 높은 투과율을 나타냈으며, 또한, 생쥐를 이용한 우울증 동물모델실험에서도 높은 효능을 보였다.
이 과제에서 주목할 것은 기존 우울증 치료제와의 차별성이다. 기존 약물은 세로토닌, 노에피네프린 및 도파민 등의 세 가지의 신경전달물질 중에서 한 가지 또는 두 가지의 재흡수를 저해하는 작용 메카니즘을 갖고 있어서 약물 치료의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 화합물은 세 가지의 신경전달물질의 재흡수를 동시에 저해하며 그 약효가 기존의 약물에 비해서 매우 높다. 또한, 뇌에 도달하는 비율이 매우 높아 미량으로도 높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며, 그에 따른 부작용도 낮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 박사는 “실제로 시중에 나와 있는 한 가지 또는 두 가지를 제어하는 물질을 병용했을 때 임상적으로 월등한 효과가 입증된 사례가 있었다”며, “이것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우울증 치료제의 경우, 단기간 복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약을 병용투여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는 우울증을 일으키는 세 가지 물질에 대해서 대조물질보다 좋은 결과를 보였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 박사팀은 세 가지 물질을 제어하는 가장 이상적인 비율을 맞춰가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또한 내년 6월까지 현재까지 나와 있는 화합물 중 다음단계 연구 대상 화합물을 스크리닝 한 뒤, 동물실험, 간독성 등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케 된다. 한 박사는 “이 연구의 핵심은 세 가지 물질을 가장 효율적으로 제어할 비율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경계 약물 경험이 많은 기관의 자문을 받으며, 연구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 초기단계 연구의 높은 위험 부담…“도전 없이는 발전도 없다”
“현 단계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글로벌신약으로 개발되려면 앞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지만, 분명 출연연에서 해야 하는 연구이며, 향후 우리나라 신약개발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도 가야할 길이다.”
후보물질 개발 단계의 연구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한 박사는 이 같은 연구를 지난 3년간 지속했으며, 그 과정에서 도출된 우수 연구 내용을 토대로 사업단에 지원했다.
한 박사는 높은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초기단계 연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로 기관의 정체성을 꼽았다. KIST 기관 고유 사업으로 시작된 연구가 좋은 결과로 도출됐고, 이후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KIST는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으며, 처음으로 KIST 만의 연구로 세계 최고 의약학 논문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아직은 기초단계이기에 성공가능성 보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에 가능성을 더 부여할 수 밖에 없다. 기존 약물과의 차이점 및 그에 따른 경쟁력 또한 아직은 가능성에 기대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울증 치료제 개발 또한 상당히 힘든 연구인 것은 분명하나, 앞으로의 시장성을 보면 해야만 하는 연구라는 것이 한 박사의 소신이다.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개발 분야만 쫓는 것은 안정적일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만의 경쟁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박사는 한국의 신약개발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두 팔을 걷은 지금, 기업은 기업의 입장에서 빠른 시간 이윤을 낼 수 있는 연구에 집중하고, 출연연은 위험부담은 높으나, 성공가능성을 충분히 갖춘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는 분야를 일반 회사에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출연연에서 지속적인 연구를 하여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업단, 인프라 지원에도 더욱 힘써주길”
“글로벌신약개발이라는 목표로 출범한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은 각각의 연구과제 지원과 함께 국내외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하며, 연구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난항을 겪고 있는 우울증 치료 연구에 뛰어든 한 박사는 국내에서도 거의 경험이 없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새로운 시스템 구축 및 각 단계의 의사결정에서 논의할 수 있는 다국적 채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 박사는 전략상의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여러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다국적제약사의 경험은 아무리 많은 연구비를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 아니다. 다양한 방면으로 과제 수행에 도움을 주고 있는 사업단의 글로벌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그 역할을 더욱 넓혀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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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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