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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ensing Story_묵현상] 1. 성공적인 딜을 위한 딜레마 (수익과 배려 공존해야)

  • 201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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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ensing Story
 
성공적인 딜을 위한 딜레마
(수익과 배려 공존해야)
 
묵현상 ㈜메디프론.디비티 대표
 

㈜메디프론.디비티는 전형적인 사이언스 중심의 바이오텍 컴퍼니이다. 그것도 여러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어렵다고 하는 중추신경계 (CNS) 질환인 신경병증 통증 (neuropathic pain)과 알츠하이머병을 적응증으로 하는 신약개발을 목표로 하는 바이오텍 회사이다. 1999년에 여섯 사람의 과학자와 한 사람의 사업개발 전문가가 만나 설립한지 올해로 벌써 열 다섯 해가 지났다. 설립된 지 15년, 코스닥에 상장한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창업자들은 단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주요 포스트를 맡아 자기 분야의 숙성된 전문지식으로 회사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필자 역시 창업자의 한 사람으로 사업개발 (Business Development)과 일반경영 (General Management)을 맡아 지난 15년간 회사에 작은 기여를 하고 있다.

회사의 기본 비즈니스 모델은 우리 연구소에서 개발한 신약후보물질 (drug candidates)을 글로벌 빅파마에 라이센싱 아웃 해서 돈을 버는 구조이다. 메디프론은 지난 15년간 해외 다국적제약사에 4건의 공동연구 및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했고 그로 인한 업프론트 (upfront)와 마일스톤 (milestone)을 합한 기술료 수입이 지금까지 누적해서 100억 원을 넘어섰다. 2018년 글로벌 시장에 론칭을 목표로 하고 있는 신경병성 통증 치료제가 세계시장에서 판매가 시작되면 매년 회사가 기대할 수 있는 러닝로열티 역시 상당히 큰 금액이다.

라이센싱 아웃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의미 있는 일은 라이센싱 계약과 공동연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글로벌 빅파마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신경병성 통증 분야와 알츠하이머병 분야의 세계적인 기초연구, 임상개발 네트워크에 끼어들게 됨으로써 글로벌 플레이어의 일원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글로벌 플레이어라고 자타가 인정하게 되면 정말 많은 기회가 생긴다. 세계적인 학회에서의 발표 기회, 비공개로 진행되는 메인 플레이어들의 개발과정에 관한 토론에 참여하는 기회, 정기적인 다국적 제약사의 파이프라인 리뉴얼 (renewal)을 위한 내부 검토회의에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기회 등 생각보다 많은 사업적 기회가 열리기도 한다. 업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업개발 담당임원 혹은 중요한 연구책임자의 휴대폰 번호를 알게 되는 것은 보너스에 불과하다.

메디프론이 첫 번째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한 것은 회사를 설립한지 4년 반이 지난 2004년 여름의 일이었다. 신경병증 통증과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이라는 두 축으로 진행되던 연구개발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때였다. 회사 설립 이래로 모두 네 건의 라이센싱 계약이 체결되었지만 여기서는 그 중 첫 번째 계약이었던 미국 뉴로제식스 (NeurogesX)와의 계약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신경병증 통증 치료제의 타겟은 TRPV1 리셉터였다. 통증과 열 신호를 전달하는 리셉터인 TRPV1의 길항제 (antagonist)를 개발하여 대상포진 후 통증 (PHN; Post Herpetic Neuralgia), 당뇨성 통증 (DPN; Diabetic Peripheral Neuropathy)의 치료제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 일차 목표였지만 효현제 (agonist) 역시 통증치료제로서의 포텐셜이 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라 부차적으로 효현제 (agonist)를 패치 형태로 개발하는 서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동아제약이 자체 개발한 TRPV1 효현제인 DA-5018을 지금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 (GSK)에 인수ㆍ합병된 미국 스티펠 (Stiefel)에 라이센싱 아웃 한 실적도 있었기 때문에 중요 비교대상 약물 (gold standard)도 있었고 시장의 수요도 있다는 것이 입증된 터라 메인은 아니지만 서브 프로그램 정도로는 개발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자연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TRPV1 효현제가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 (Capsaicin)이다. 캡사이신은 TRPV1 리셉터에 작용해서 강력한 통증신호 차단효과를 나타낸다. 하지만 강한 자극성 (pungency) 때문에 경구용 (oral administration) 제제로는 개발이 곤란해서 주로 피부를 통해 약물이 전달되는 크림 또는 패치 타입으로 개발된다. 하지만 강한 자극성이라는 부작용은 여전히 남아있어 피부에 붙이는 순간의 작열감 (burning sensation)이 너무 심해 리도케인 (Lidocaine) 등의 국소마취제를 미리 바른 후에 캡사이신 패치를 붙이게 된다. 우리 개발팀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통증신호 차단 효과는 캡사이신에 비해 조금 떨어지더라도 자극성이 캡사이신에 비해 현저히 적은 화합물 합성에 매달렸다. 4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TRPV1 길항제 (antagonist)와 효현제 (agonist)를 합성하고 이 화합물들을 포르말린 테스트, 캡사이신 드링킹 테스트, 베넷 모델, SNL Chung’s model 등 여러 종류의 인-비보 (in-vivo) 통증실험을 통해 효능 (efficacy)를 평가하고 자극성을 비롯한 다양한 부작용에 대한 평가를 반복하면서 리드 화합물 최적화 (lead optimization) 작업을 했다. 합성했던 화합물의 개수가 1,200종에 달했을 때, lead라고 내세울 수 있는 화합물을 찾아냈고 후속 실험들을 통해 TRPV1 효현제 (agonist) 후보물질 (clinical candidate)을 확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TRPV1 길항제 (antagonist) 후보물질도 확정하게 되었는데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둔다.

개발팀이 프론트러너 (front-runner)들을 대상으로 후보물질을 확정하기 위한 최종적인 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 BD (Business Development)팀에서는 미리 만들어두었던 잠재 고객 (potential customers) 리스트를 업데이트하고 공개 가능한 (non confidential) 데이터 패키지의 최종 버전을 완성했다. 당시에는 라이센싱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태라서 유럽에 있는 컨설팅회사에 의뢰하여 이런 프로세스들을 진행하게 되었다. 라이센싱에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던 LD, Inc. 컨설팅회사는 비공개 합의서 (CDA), 공동 연구 (Research Collaboration) 및 라이센싱 (Licensing) 표준 계약서를 비롯한 다양한 서식, 공개 가능한 데이터 패키지 (Non confidential data package) 샘플들 그리고 잠재 고객을 선별하기 위한 자료조사 업무까지 맡아주었다. 이러한 업무들은 그리 비싼 비용이 드는 일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자료를 구할 길이 막막했지만 지금은 Google 웹 검색만 해도 다 찾을 수 있는 표준적인 것들이다.)

정작 비용이 많이 드는 업무는 잠재고객 회사들을 선별하고, 각각의 회사에 접촉하여 반응을 알아보는 등의 초기 마케팅 활동과 잠재 고객이 나타났을 때 CDA 체결, term sheet 수령, due diligence, 추가 개발 요구사항 조정 그리고 계약까지 이어지는 길고 험난한 협상과정에 대한 컨설팅이었다. 당시에 라이센싱 추진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LD에게 일을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컨설팅 회사가 요구하는 과도한 금액 때문에 추가 컨설팅 계약을 맺어야 할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LD와는 적은 금액의 착수금을 내는 대신 상당한 비율의 성공보수를 약속하고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첫 번째 잠재고객 회사와 상당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라이센싱 딜을 진행하다 빈손으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스스로 무척 훌륭한(?) 화합물을 가지고 있는, 유럽에 근거를 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를 거느린 뛰어난 바이오텍 컴퍼니인줄로만 알았다.

우리의 컨설팅 회사는 꽤 많은 잠재 고객회사에 자료를 보냈고 적어도 세 곳 이상에서 관심 있다는 답변을 받아내었다. 몇 군데 잠재 고객회사와 석 달 정도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가 2004년 7월에 우리의 첫 번째 라이센싱 계약이 이루어졌다. 상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통증치료제 전문 회사인 뉴로제식스 (NeurogesX)였다. 소규모 바이오텍 회사이기는 해도 나스닥에 상장되어있어서 임상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충분한 현금을 가진 제약회사였다. 그 회사는 원래 자체적으로 개발하던 고농도 8% 캡사이신 패치가 효능은 충분하지만 강한 자극성 때문에 미국 FDA 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우리 회사가 개발한 TRPV1 효현제 (agonist)를 백업 화합물로 임상개발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라이센싱을 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강력하게 요구했던 공동연구 (research collaboration)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어쨌든 회사가 설립되고 5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발생했다. 그것도 기술 라이센싱을 통한 업프론트 (upfront) 기술료 수입이라 더욱 뜻 깊은 일이었다. 

이 딜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강한 자극성이라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2010년, 미 FDA에서 뉴로제식스의 큐텐자® (Qutenza®) - 고농도 8% 캡사이신 패치를 허가했고 2012년에는 유럽 EMEA 역시 이 제품의 시판을 허가했다. 그러자 뉴로제식스에서는 성급하게도 우리로부터 기술을 도입했던 TRPV1 효현제의 추가 개발을 중단하고 모든 권리를 우리에게 되돌려 주게 되었다. 그 후에 큐텐자의 유럽 내 판권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제약회사인 아스텔라스 (Astellas)에 일시불 현금 4천만 유로 (6백억 원)에 판매되었고 미국 내 판권은 어코다 써라퓨틱스 (Acorda Therapeutics)에 판매되었다. 하지만 큐텐자®는 강한 자극성과 높은 원가로 인한 가격경쟁력 부족 (패치 한 장의 가격이 $670) 때문에 시장 침투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3년, 큐텐자®가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메디프론에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캡사이신에 비해 부작용이 현저히 적은 TRPV1 효현제를 크림 혹은 패치 타입으로 개발하게 되면 작열감과 발적의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고 피부에 부착할 수 있을 것이며 원료물질 (API)이 화학합성 제제이므로 원가가 캡사이신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해서 큐텐자®의 단점을 극복한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13년 초에 글로벌 빅파마들에게 소개를 시작했고 몇몇 회사와는 비밀보호협약 (CDA)를 체결하고 데이터를 주고받는 단계에 접어들어 있다.

뉴로제식스와의 라이센싱 계약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을 뜨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라이센싱 딜이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 화합물이 좋은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내 물건을 구매해 줄 잠재 고객의 입장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내 이익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이익도 챙겨주는 마음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야만 장기적으로 성공적인 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님 말씀에 맞먹을 정도로 뻔한 이야기지만 실전에 임하게 되면 이를 다 잊어버리고 탐욕과 공포 속에서 악수(惡手)에 악수를 거듭하다가 딜을 망치는 사례를 여러 차례 보았다.

다음 번에는 이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로서 우리 회사와 독일 그루넨탈 제약 (Grunenthal GmbH) 사이에 맺어진 공동연구 및 라이센싱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계약 당시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중요한 프로그램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그루넨탈 제약은 유사한 프로그램에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있던 우리 회사에 연락을 해왔다. 우리 회사가 유력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읽고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서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말펜사 공항에서 스파이 접선하듯 첫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