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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ensing Story_묵현상] 2. Licensing Deal,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 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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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ensing Story]
2. Licensing Deal,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묵현상 ㈜메디프론.디비티 대표

나는 지금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가는 루프트한자 LH713편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메디프론과 독일의 그루넨탈(Grunenthal)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신경병성 통증 치료제인 TRPV1 antagonist의 임상시험 일정과 임상 프로토콜을 의논하기 위해 거리로는 5천3백 마일, 약 11시간이 걸리는 독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내 여행기록에 따르면 57번째 서울 프랑크푸르트 항로를 날고 있다. 그간 쌓인 독일 왕복 항공 마일리지만 해도 45만 마일이다. 루프트한자가 스타 얼라이언스의 일원인 덕분에 아시아나 항공의 하프 밀리언 마일러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관계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벅찬 환희와 눈물의 곡절에 관한 기록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개발 파트너인 독일의 크리스토프 박사는 회의 중에 신약개발의 과정을 히드라의 목을 잘라내는 슬라이드를 통해 그 어려움을 묘사해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멀고도 험한 신약개발의 과정 속에서 사업과 관련된 첫 발자국인 라이선스 딜은 두 사람이 애 낳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같이 사는 결혼과 비교하자면 결혼식을 올리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쉽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지금은 파트너로서 신경병성 통증(neuropathic pain) 치료제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형제처럼 가까운 관계지만 ㈜메디프론과 독일 아헨(Aachen)에 위치한 제약회사 그루넨탈(Grunenthal GmbH)은 2004년 가을 이전에는 만난 적도 없고,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뉴로제식스(NeurogesX)와 첫 번째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라이선스 딜에 대한 이런저런 경험들을 쌓게 된 우리 팀은 – 사실 당시에는 팀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리드 화합물을 찾아내고 다양한 동물시험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팀은 서울대 약대 이지우 교수와 메디프론의 연구소장 김영호 박사, 가망 고객(potential customers)을 식별하고 공개가능 데이터 패키지(Non confidential data package)를 첨부한 이메일을 가망 고객들에게 쏘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되는 고객 접촉의 전 과정을 관장하는 필자, 그리고 구체적인 협상이 시작되면 우리 팀의 협상 전략을 리뷰하고 법률적 조언을 주기로 되어있는 법무법인 화우의 김원일 변호사. 이렇게 네 사람이 팀의 전부였다. 하지만 팀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그리 만만한 인물들은 아니다. –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TRPV1 리셉터 길항제(antagonist)의 시장 포텐셜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2004년 당시에 신경병성 통증 치료제로 TRPV1 길항제를 개발하고 있던 회사들, 예를 들면 미국에는 머크(Merck), 애보트(Abbott), 화이자(Pfizer), 암젠(Amgen) 등이 전임상 단계에서 임상진입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었고 유럽에서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바이엘(Bayer) 등이 대규모 팀을 꾸려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노바티스(Novartis), 로슈(Roche)도 파이프라인 챠트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내부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일본담배(JTS)와 오노(Ono)제약이 개발하고 있었다. 회사 이름을 들어보면 알 수 있지만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회사치고 신경병성 통증 치료제로 TRPV1 antagonist를 개발하지 않는 회사는 없었다. 당시에 가장 진도가 빠른 것이 머크(Merck)의 프로그램이었다. 머크는 영국에서 이미 임상1상을 거의 종료해가고 있다는 소문이 업계에 자자했다. 우리의 개발 속도는 이들에 비하면 한참 늦은 것이었다. 마케팅 교과서에 흔히 나오는 말로 “윈도우가 닫히기 직전” 상황인 것이다. 만약 우리 프로그램을 들고 2004년 당시에 연구비를 지원해 달라고 정부과제에 신청을 했다면 당장에 거절당했을 것이 틀림없다. “너무 늦었어요. 시장이 꽉 찼어요.”
 
아마 많은 연구자들이 이런 문제를 실제로 겪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장 포텐셜이 크고 타겟이 확실하면 그 들판에는 최신 장비로 무장한 사냥꾼들이 득시글거린다. 내가 사냥에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정부 과제를 신청하면 그 들판에는 사냥꾼이 너무 많아 사슴을 포획할 성공 확률이 낮기 때문에 지원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반면에 포텐셜은 크지만 타겟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들판에 사냥꾼은 별로 없지만 사슴이 나타날지 알 수 없어서 지원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듣기에는 그럴듯한 논리지만 사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지구상에 사슴이 단 한 마리만 존재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그 들판에는 사슴이 여러 마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큰 사슴, 작은 사슴, 고라니 막 섞여있기 때문에 최신 장비로 무장한 사냥꾼이 잡으려는 사슴과 활을 들고 사냥을 하려는 내가 노리는 목표가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 연구비 지원을 받으려는 연구자는 이 사실을 데이터에 근거해 정확하게 설명함으로써 평가자를 납득시켜야만 한다.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TRPV1 antagonist의 효능(efficacy)은 상당히 좋았고 안전성(safety) 역시 좋은 편이었다. 업계에서 대단히 좋은 화합물이라는 평을 듣는 애보트(Abbott)의 화합물에 비해 손색이 없는 훌륭한 리드 화합물(lead compound)이었다. 그리고 우리 화합물을 라이선스-인 할 가능성이 있는 가망고객들 거의 다 자기들의 자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라이선스의 기회가 많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뉴로제식스와의 라이선스 딜을 하면서 우리의 대리인이었던 런던의 LD를 통해 미국, 유럽의 통증 분야 전문가(KOL: Key Opinion Leader)들과 안면을 틀 기회가 생겨 신경병성 통증 분야에 대해 폭넓게 시장상황을 이해하고 있던 우리 팀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들판에 사냥꾼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사냥감은 아직 들판에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약물(drug) 중에 희귀질환에 사용되는 오펀 드럭(orphan drug)이 있다면 제약회사 중에는 특수분야에 강점을 가지는 스페셜티 파마(specialty pharma)가 있다. 전체 매출액은 사노피, 화이자 같은 빅파마(Big Pharma)보다 작지만 자기가 강점을 가지는 특수분야에서만큼은 빅파마에 손색없는 경쟁력을 가지는 제약회사를 스페셜티 파마라고 한다. 통증 분야에서의 스페셜티 파마는 세계적으로 몇 개 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회사가 미국의 엔도(Endo Pharmaceuticals), 킹(King Pharmaceutical), 퍼듀 파마(Purdue Pharma), 유럽의 그루넨탈(Grunenthal GmbH)이다. – 2014년 현재 킹(King Pharmaceutical)은 화이자가 합병해서 독립된 회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 엔도는 치과에서 주로 사용하는 마취제인 리도케인(Lidocaine)을 패치로 개발하여 상표명 라이도덤(Lidoderm®) 하나만으로 연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퍼듀 파마는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Oxicontin®)으로 연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그루넨탈은 마약성 진통제인 트라마돌(Tramadol®)과 누신타(Nucynta®)로 연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인 전문 제약사(specialty pharma)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는 이 회사들이었다. 업계의 리포트들을 찾아보고 여러 종류의 인텔리전스 리포트를 읽어도 스페셜티 파마 네 회사가 TRPV1 프로그램을 강력하게 진행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 네 군데 회사를 대상으로 리서치를 했다. 회사의 문화는 어떤지, 외부 프로그램을 인-라이선스한 실적은 있는지, 연구개발비 집행실적은 어떤지, 현재 임상이 진행중인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지 등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조사를 한 결과 라이센싱 딜을 추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공개가능 데이터 패키지(Non confidential data package)를 잘 만들어서 목표로 한 회사의 의사 결정권자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에 가까운 일이다. 비즈니스 개발(BD) 부문의 실무자, 담당 임원을 통과해서 연구소 과학자들의 리뷰를 거쳐 뉴로사이언스 또는 통증 부문 헤드의 책상 위에 내 제안서(proposal)가 올라갈 확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단순한 통계에 따르면 공개가능 데이터 패키지로부터 시작해서 비밀보호협약(CDA: confidentiality Disclosure Agreement, 제약업계를 제외한 다른 업계에서는 이것을 NDA, Non Disclosure Agreement라고 한다. 훨씬 이해하기 쉬운 용어이다. 그러나 제약업계에서는 US FDA에 신약 허가신청을 하는 것을 NDA, New Drug Application이라고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CDA라는 명칭을 사용한다.)을 체결할 확률은 22%이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텀 쉬트(term sheet 혹은 binding offer라고도 한다.)를 받을 확률은 22%의 9%라고 한다. 즉 2%라는 말이다. 낙타가 아닌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할 확률과도 비견될 것 같다.  예술 혹은 기술에 속하는 이 부분은 다음 연재로 미루고 여기서는 그루넨탈과 딜이 맺어진 과정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공개가능 데이터 패키지를 가망 고객회사(potential customers)의 관계자들에게 모두 보냈다. 관계자들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는 것도 큰 일 중의 하나다. 이런 관계자들과 평소에 관계를 잘 맺어두어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작은 규모의 벤처 회사라면 이런 정보에 어두울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렇다면 라이선싱 전문 컨설팅 회사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메디프론도 맨 처음 라이선싱 딜을 할 때는 런던의 컨설팅 회사를 통할 수밖에 없었다.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4년 당시에는 우리가 직접 프로세스를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 번 해보니 직접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었다.
 
라이선싱 딜은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어떤 여성이 정말 아름답다고 해서 모든 남성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남자가 재벌가의 상속자라고 해서 모든 여자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가치관과 취향이 비슷해야 하고 두 사람이 처해있는 여건이 맞아야 연애도 할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비임상 단계에서 개발하고 있는 GLP-1 당뇨병 치료제가 뛰어난 효능을 보일 뿐만 아니라 안전성도 좋다고 가정해볼 때, 이 물질은 무조건 빅파마와 라이선스 딜이 성사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빅파마에서 자체 개발한 물질이 임상시험에 들어갈 준비를 갖추고 있다면 이 화합물을 라이선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 현재 판매되고 있는 DPP IV 저해제의 실적이 너무 좋아 다른 물질을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어떤 회사는 최소한 임상2상에 진입한 화합물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터무니 없어 보이지만 과거의 라이선스 자료들을 잘 검토해 보시라. 정말로 그런 빅파마도 있다. 이런 회사에는 초기 단계 약물을 가지고는 절대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전기 값도 안 나온다.) GLP-1 당뇨병 치료제를 제대로 된 조건에 라이선스 하려면 이 화합물을 간절히 원하는 상대를 찾아야 한다. 연애를 시작할 때 가장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상대는 방금 실연당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신약 후보물질을 라이선스 아웃 하려고 할 때에도 똑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내부 프로그램이 실패한 회사가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가망 고객회사(potential customer)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무조건 가망 고객회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한 이유에 따라 그리고 회사 내부의 정치적 입장(political situation)에 따라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라이선싱 딜이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하는 지도 모른다.
 
우리와 거래를 하고 싶어했던 스페셜티 파마들의 입장은 모두 달랐다. 어느 회사는 당시에 방금 론칭한 제품의 성공에 흥분한 나머지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관심이 없었고 - 10년이 지난 지금 그 회사는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 또 다른 회사는 내부에 자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라인선싱보다는 우리 데이터 엿보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런 상대에는 우리도 관심이 없었다. 두 회사만이 진지하게 라이선스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독일 아헨(Aachen)에 위치한 그루넨탈 제약이었다.
 
그루넨탈은 safety pharmacology 교과서에 소개된 탈리도마이드(Talidomide)를 개발했던 회사로만 알고 있었는데 심각한 약화 사고가 났던 1962년 이후 진통제 전문회사로 변신을 해서 마약성 진통제의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잡은 트라마돌®을 출시하고 이어서 이중 효능 진통제인 누신타® (Nucynta®)를 출시한 통증 분야의 세계적인 스페셜티 파마가 되었다. 어쨌든 당시에 그루넨탈은 차세대 통증치료제 분야의 기수가 신경병성 통증 치료제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통증치료 포텐셜이 높은 타겟으로 TRPV1과 소디움 채널 블로커(Na channel blocker)를 선택해서 두 개의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던 중, 2004년 초에 TRPV1 자체개발 프로그램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 내부적으로 안달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메디프론의 TRPV1 antagonist에 대해 알게 된 것이었다. 상황이 일단 여기에 이르게 되면 남은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서로 시간이 없어 이탈리아 공항에서 첫 미팅이 이루어졌다. 간단히 수인사를 하고 서로 얼굴을 살피며 간을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잘 해보자 정도로 가벼운 만남을 가지고 나서 양측 주요인사들의 미팅 스케줄을 정했다. 그것도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있는 쉐라톤 호텔의 미팅 룸이었다.
 
2004년 8월 코펜하겐에서 관계자들이 만나는 미팅이 성사되었다. 주로 데이터와 과학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미팅이었고 여기서 급작스럽게 MTA(material transfer agreement)가 체결되었다. 우리는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즉시 화합물 일정량을 독일로 보냈다. 그만큼 우리의 데이터에 자신이 있었다는 말이다.
 
2004년 11월 24일 안산에 있는 메디프론 연구소의 좁은 회의실에 독일에서 출장 온 그루넨탈의 과학자 세 사람과 변호사 한 사람을 포함해서 모두 여덟 사람이 모였다. 과정은 다른 모든 라이선스 딜과 동일하게 진행되었지만 진행속도는 빛과 같이 빨랐다. 당일에 실사가 진행되었고 하루 만에 텀 쉬트가 제출되었다. 가히 빛의 속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가 전달한 화합물의 실험결과가 환상적이어서 상대 측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도 그루넨탈의 그 열정에 빠져들었고 서로 빛의 속도로 무리한 요구 조건들을 마구 쏟아놓았으며 양측의 변호사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서로의 조건을 조정하던 3일 간이었다. (우리는 통증전문 제약회사에 대고 타겟 바인딩 조건을 들이밀었다. 말하자면 TRPV1 리셉터는 우리와만 연구.개발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루넨탈 협상팀은 본사와 긴 시간의 전화통화 끝에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반대로 우리도 큰 건의 양보를 해야만 했다. 나중에 이런 익스클루시비티 exclusivity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온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양측은 길고 긴 협상을 마무리하고 각각의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2005년에 공식적으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공동연구에 착수하게 되었다. 텀 쉬트는 법률적 바인딩(legal binding)이 있는 공식 문서다. 그래서 다른 말로 구속되는 제안(binding offer)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일단 텀 쉬트가 제시되고 협상을 통해 수정이 되면 사실상의 딜은 다 끝난 셈이다. 그 다음의 복잡한 협상들은 변호사의 몫이다. 따질 것이 끝도 없이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 중요하게 보인다. 물론 사건이 벌어지면 사소한 문장,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단어 하나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변호사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변호사들이 합의를 이루게 되면 (이 과정이 몇 달 걸린다.) 이사회를 거쳐 양쪽 책임자가 서명하고 공식적인 계약이 이루어진다. 이 때 가장 짜릿한 것이 회사 은행계좌에 선수금 혹은 전도금 (upfront)이 입금된다는 사실이다. 2005년 계약하고 나서 2013년 말까지 그루넨탈로부터 전도금을 포함해서 마일스톤 기술료로 받은 금액이 원화로 100억 원이 넘었다. 계획대로 신약 허가를 받고 2018년에 출시된다면 우리가 추가로 받을 금액이 500억원 정도가 된다. 물론 러닝로열티도 2038년까지 20년간 매 반기마다 받기로 되어있다. 예상판매액 대로 되기만 한다면 매년 250억원에서 500억원 사이의 러닝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그루넨탈과 함께 9년간 공동연구, 공동개발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 라이선싱은 정말 결혼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을 소개 받거나 선을 보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그저 시작일 따름이다. 같이 살면서 애도 낳고 집도 넓히고 집안의 대소사를 같이 치르면서 진정한 부부가 되는 것처럼 라이선싱을 통해 혼인을 해서 함께 연구.개발을 하면서 진정한 파트너가 되어가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7시30분. 그루넨탈에서 보내준 승용차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려 350km 떨어진 아헨(Aachen)의 크벨렌호프(Quellenhof) 호텔에 도착하니 9시30분, 평균시속 180Km/h로 달려온 셈이다. 체크인을 하는데 메모가 와있었다. “Das Bit”라는 이름의 호텔 바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가방을 호텔방에 내려놓고 Das Bit로 갔더니 크리스토프 박사를 비롯한 우리 프로그램의 핵심 과학자 세 사람이 모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럽 사람이 휴일 오후에 외부 손님을 만나러 호텔로 오다니. 게다가 오늘은 일요일 저녁인데 (Das ist Sontag Abend). 우리 다섯은 필스너 맥주를 큰 잔으로 일곱 잔을 나누어 마시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독일의 오월 (Im Wunder shoenen Monat Mai) 밤 거리로 나와 신록의 내음을 만끽했다.